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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당 임한결

효린과 '학폭투', 우린 왜 분노하나

아무렇게나글써 2019. 5. 29. 09:24

'학폭투’, 긴장해야 할 곳은 연예계가 아닌 공교육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이제 곧 10년이 되는 내가 간만에 학생 시절의 나를 구체적으로 돌아보았다. 그 시절 삶의 이유였던 친구들, 매점, 체육시간의 아련한 추억부터 치열한 입시경쟁, 경직된 교육방식과 징벌체계의 불쾌한 기억들까지 다양한 것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감상으로만 끝내자니, 나의 학창시절은 ‘지금의 나’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쳤고 더욱이 그 학창시절을 만들어낸 ‘학교’라는 장(場)은 다음 세대에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나와 우리의 학창시절은 ‘감상’을 넘어 ‘평가’될 필요가 있다.

최근 가수 효린을 비롯한 연예인들의 과거 학교폭력에 대한 폭로가 연달아 일어나면서 소위 ‘학폭투(학교폭력+미투)’라는 일종의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지목된 연예인들이 분명한 현실적 피해를 주었다면 그에 응당한 사죄와 문제해결 노력은 물론이고 공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까지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이 ‘학폭투’의 끝은 이들의 사죄에서 멈춰선 안 되고 우리 사회 ‘공교육에 대한 공론화’로 나아가야 한다.

2018년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생 중 1년 동안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한 학생의 비율은 1.3%다. 이 통계값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이를 제쳐두더라도 이 통계를 1년이 아닌 학창시절 전체로 계산하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 확률은 무려 21.6%다(1.3%*12). 규모뿐만 아니라 정도의 심각성도 논란이 되고 있다. 2017년 피투성이가 된 소녀의 사진으로 세간에 알려지게 된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 전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고 ‘소년법 폐지’ 논란으로까지 확장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학폭투’라는 현상의 이면에는 이러한 학교폭력의 보편성과 잔인성의 심각함이 자리해있다.

대한민국 공교육은 이에 상응한 고민과 대응을 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교사에게 학교폭력 업무는 업무분장 기피 1순위다. 학부모들도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가해학생에게 책임을 돌리는데 급급하다. 교육부는 사후처리 절차와 단순 예방교육 정도의 해결책만 내놓는다.

대한민국은 이미 교육을 ‘신분상승’의 도구로서 바라보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학교폭력은 신분상승의 장애요소일 뿐이다. 누구도 학교폭력으로부터 학생들의 아픔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직면해야 할 사실은 신분상승의 도구로서의 교육, 즉 학생을 서열화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은 끊임없이 학생들의 열등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학교 시스템 자체가 학교폭력을 강화시킬 개연성이 매우 높다. 학교폭력은 단순히 가해학생만의 책임이 아니다.

교육부는 ‘학폭투’를 보며 학교 시스템이 학생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책임감 있게 받아들이고 교육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꾸는데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시 한 번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의 긍정적 자존감과 공동체에 대한 희망적 인식을 기르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중고등부 교육은 대학 서열화를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입시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초등부 교육은 일본의 인성 개발을 위한 스포츠 중심 교육 도입과 같이 공동체의 장을 경험할 수 있는 학습 시스템을 연구하고 도입해 가야 한다.

내가 학창시절을 통해 습득한 것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이었다. 친구들 사이에 갈등을 해결하고 조정하는 방법을 학교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홀로 섰던 첫 공동체의 모습이었고 졸업한지 10년이 된 지금까지도 화합보다 경쟁에 훨씬 익숙한 이 삶의 방식이 나를 종종 외롭게 한다. 그래서 진심으로 소망해본다. 지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만큼은 친구를 경쟁의 대상이 아닌 행복의 원천으로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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